1,200원에 사놓고 1,500원에 못 판 달러 이야기

작년에 달러를 좀 샀다. 정확히는 재작년부터 조금씩 모았는데, 그때 환율이 1,200원대 중반이었다. 여행 갈 때 쓰려고 조금, 그리고 "달러는 언젠가 오른다"는 막연한 믿음으로 조금. 그렇게 몇백만 원어치를 달러통장에 넣어뒀다.
지금 원달러 환율은 1,530원대다. 이번 달 초에 잠깐 1,559원까지 튀었다는 기사도 봤다. 계산상으로는 꽤 벌었다. 근데 나는 아직도 그 달러를 거의 못 팔았다. 왜 그랬는지, 그리고 뭘 잘못 생각했는지 정리해두려고 한다.
살 때는 쉬웠는데 팔 때가 지옥이었다
달러를 살 때만 해도 계획이 있었다. "1,350원 넘으면 절반 팔고, 1,400원 넘으면 다 팔자." 나름 규칙까지 정해놨다.
문제는 실제로 1,350원이 됐을 때였다. 그때 뉴스가 온통 "환율 계속 오른다", "1,400원 간다"는 얘기뿐이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더 벌 것 같았다. 그래서 안 팔았다. 1,400원이 됐을 때는? 똑같았다. 이번엔 1,450원 얘기가 나왔다. 또 안 팔았다.
그러다 1,530원까지 왔다. 지금은? "1,600원 간다"는 전망이 또 돌아다닌다. 나는 여전히 못 팔고 있다. 웃긴 건 벌었는데도 마음이 안 편하다는 거다. 팔면 그 뒤에 더 오를까 봐, 안 팔면 다시 떨어질까 봐. 결국 규칙을 정해놓고도 한 번도 안 지켰다.
숫자로 보면 그렇게 대단한 수익도 아니었다
한번 솔직하게 계산해보자. 평단가를 1,250원이라고 치고, 지금 1,530원에 판다고 하면 달러당 280원을 번 셈이다. 수익률로는 약 22%다.
숫자만 보면 좋아 보인다. 근데 여기엔 함정이 있다.
첫째, 살 때 환전 수수료가 붙었다. 은행 현찰 살 때 스프레드가 보통 1.75% 정도인데, 환율 우대 90% 받아도 실질 비용이 붙는다. 팔 때도 마찬가지다. 사고팔 때 양쪽에서 조금씩 떼인다.
둘째, 그 돈을 2년 넘게 묶어뒀다. 만약 같은 돈을 연 3% 예금에 넣었으면 2년이면 세후로 5% 넘게 붙었을 거다. 달러가 오르길 기다리는 동안 다른 기회는 포기한 셈이다.
셋째, 이건 결과론이다. 환율이 반대로 갔으면 나는 지금 손실을 안고 "언젠가 오르겠지"를 되뇌고 있었을 거다. 22% 수익은 운이 좋았던 것에 가깝지, 내 판단이 옳았던 게 아니다.
환테크가 어려운 진짜 이유
주식은 회사가 성장하면 장기적으로 오른다는 논리라도 있다. 근데 환율은 방향이 없다. 오늘 오른 이유가 내일이면 정반대 이유가 된다.
이번에 환율이 오른 것도 그렇다. 미국 연준이 금리를 생각보다 안 내릴 것 같다는 관측,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8거래일 연속 팔면서 달러 수요가 늘어난 것, 이런 게 겹쳤다고 한다. 근데 이 요인들은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 연준이 금리를 내리기 시작하면 달러는 약해질 수도 있다. 그럼 지금 1,530원이 반년 뒤엔 1,400원일 수도 있는 거다. 아무도 모른다.
내가 배운 건 이거다. 환율은 예측하는 게 아니라 대응하는 거다. 그리고 대응하려면 규칙을 지켜야 하는데, 그게 제일 어렵다.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하고 있나
요즘은 생각을 좀 바꿨다. 달러를 "투자"로 보지 않기로 했다.
대신 실수요 기준으로 접근한다. 해외여행 계획이 있거나, 해외 직구를 자주 하거나, 자녀 유학처럼 미래에 달러 나갈 일이 있으면 그때 쓸 만큼만 미리 확보하는 식이다. 환율이 쌀 때 실제로 쓸 달러를 사두는 건 의미가 있다. 근데 "오를 것 같아서" 사는 건 그냥 방향성 베팅이라는 걸 인정했다.
그리고 이번엔 진짜 규칙을 정했다. 여행 예산으로 쓸 달러만 남기고, 나머지는 이번 달 안에 나눠서 팔기로. 한 번에 안 팔고 몇 번에 걸쳐 파는 이유는, 어차피 고점을 맞출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평균으로 파는 게 마음이 편하다.
결국 정답은 없는 것 같다. 누군가는 1,600원까지 들고 가서 더 벌 수도 있고, 누군가는 지금 팔고 떨어지는 걸 보며 안도할 수도 있다. 나는 그냥 내 그릇만큼만 하기로 했다. 다들 달러 어떻게 굴리고 계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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