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이 글은 자랑이 아니라 반성문에 가깝다. 사회초년생 때부터 "무조건 종잣돈부터 모아야 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고, 나도 그렇게 했다. 그런데 3년쯤 지나고 통장을 들여다보다가 한숨이 나왔다. 숫자는 늘었는데,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예전보다 줄어든 느낌. 그때 처음으로 "물가"라는 게 내 통장을 갉아먹고 있다는 걸 체감했다.
월 100만원씩, 숫자는 늘었는데
계산은 단순했다. 맞벌이 시작하기 전, 혼자 벌 때 얘기다. 월 실수령 300 남짓에서 고정비 빼고 악착같이 월 100만원을 적금에 넣었다. 3년이면 원금만 3600만원. 이자까지 하면 3800 정도. 통장 숫자만 보면 뿌듯했다.
근데 문제는 그 3년 사이에 물가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는 거다. 지난주 발표를 보면 6월 소비자물가가 1년 전보다 3.2% 올랐다. 한국은행은 7월엔 유가 하락 영향으로 상승폭이 다소 낮아질 거라고 봤지만, 어쨌든 매년 이런 식으로 물가가 오른다.
한번 계산해보자. 물가가 매년 평균 3%씩 오른다고 치면, 3년 뒤 3600만원의 실질 가치는 대충 이렇게 깎인다.
| 시점 | 명목 금액 | 물가 반영 실질 가치(연 3% 기준) |
|---|---|---|
| 지금 | 3,600만원 | 3,600만원 |
| 1년 후 | 3,600만원 | 약 3,495만원 |
| 3년 후 | 3,600만원 | 약 3,294만원 |
가만히 현금으로만 들고 있었다면 3년 만에 구매력 기준으로 300만원 넘게 증발한 셈이다. 물론 나는 적금에 넣어서 이자를 조금 받긴 했다. 근데 세후 이자율이 물가 상승률을 넘지 못하면, 결국 실질적으로는 마이너스다. 이게 좀 애매한데, 저축을 안 했다는 게 아니라 "현금성 자산에만 몰빵한 게" 아쉬웠다는 얘기다.
그래서 종잣돈 모으기가 틀렸냐면
아니다. 이건 분명히 하고 싶다. 종잣돈은 여전히 모든 재테크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투자를 하려고 해도 굴릴 돈이 있어야 하고, 갑자기 목돈 나갈 일 생겼을 때 버티는 힘도 결국 현금에서 나온다. 나도 그때 모은 종잣돈 덕분에 이후에 뭐라도 시작할 수 있었다.
내가 후회하는 건 "모으는 것 자체"가 아니라 "모으기만 하고 멈춰 있던 것"이다. 목표 금액을 정해두고 거기 도달할 때까지 100% 적금만 고집했는데, 지금 다시 하라면 이렇게 나눌 것 같다.
- 6개월치 생활비 정도는 파킹통장·적금 같은 안전한 현금으로. 이건 물가에 좀 깎여도 어쩔 수 없다. 비상금이니까.
- 그 이상 모이는 돈부터는 조금씩이라도 물가를 이길 수 있는 자산에 분산.
핵심은 순서다. 비상금 없이 투자부터 들어가면 시장 흔들릴 때 팔 수밖에 없고, 반대로 전부 현금이면 물가한테 야금야금 진다. 우리 집도 지금은 이 두 가지를 나눠서 굴린다.
사회초년생 때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거창한 결론은 없다. 종잣돈은 모으되, "얼마를 모았나"만큼 "이 돈이 물가를 이기고 있나"도 가끔 들여다보라는 것. 통장 숫자가 늘어난다고 안심하지 말고, 3.2% 같은 물가 숫자를 옆에 놓고 비교해보면 생각이 좀 달라진다.
정답은 각자 상황마다 다를 거다. 나처럼 안전한 걸 선호하는 사람은 현금 비중이 높아도 마음이 편하고, 어떤 사람은 일찍부터 분산투자로 굴리는 게 맞다. 다만 "아무 생각 없이 현금만 쌓아두는 것"은 생각보다 공짜가 아니라는 것. 그거 하나는 3년 삽질하고 나서야 알았다.
다들 종잣돈 어떻게 굴리고 계신지 궁금하다. 댓글로 알려주시면 나도 좀 배우고 싶다.
※ 이 글은 개인적인 정보 공유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모든 투자 판단과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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