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 나는 달러를 샀다. 정확히는 달러예금에 넣었다. 뉴스마다 "환율 1400원 돌파", "고환율 장기화" 같은 제목이 도배되던 시기였다. 다들 달러 사야 한다길래, 나도 뭔가 뒤처지는 기분이 들어서 급하게 계좌를 텄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뒤로 한동안 계좌를 열 때마다 한숨이 나왔다.
왜 샀냐면
이유는 단순했다. 환율이 오르는 것 같았고, 더 오를 것 같았다. 그게 전부였다. 나름 근거라고 생각한 것도 있었다. 미국 금리가 높으니 달러 강세는 계속될 거고, 원화는 약할 거라는 흔한 논리. 사실 이건 지금 봐도 완전히 틀린 얘기는 아니다. 실제로 원달러 환율은 계속 높은 수준을 맴돌고 있으니까.
문제는 내가 산 '가격'이었다. 나는 환율이 1440원쯤 하던 날, "여기서 더 오르면 어쩌지" 하는 조바심에 목돈을 한 번에 넣었다. 500만원어치. 환전 수수료까지 감안하면 실제 매입 단가는 더 높았다. 은행 창구 환율은 고시환율에 스프레드가 붙어서, 살 때는 비싸게 사고 팔 때는 싸게 파는 구조다. 우대율 받아도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그 다음에 벌어진 일
며칠 지나니 환율이 슬금슬금 빠졌다. 1420원, 1410원. 이번 달 들어서는 KB의 데일리 리포트 기준으로 8월 7일 장중 1407원까지 내려갔고, 8월 19일에는 1408~1421원 사이에서 왔다갔다 했다. 내가 산 1440원 근처에는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연준의 추가 긴축 기대가 완화되면서 달러가 약해졌다는 분석이 나왔는데, 솔직히 그때 나는 그런 흐름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계산해보자. 1440원에 500만원, 대략 3,472달러를 샀다고 치자. 지금 1410원이면 원화로 되돌릴 때 약 489만원. 30만원 넘게 마이너스다. 여기에 살 때 낸 수수료, 팔 때 낼 수수료까지 더하면 손실은 더 커진다. 이자? 달러예금 금리도 붙긴 하지만 이 환차손을 메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뭘 잘못했나
지나고 나서 정리해보니 실수가 명확하다.
첫째, 나는 '환율 방향'을 맞히려고 했다. 그런데 환율은 금리, 무역수지, 지정학, 심지어 남의 나라 중앙은행 말 한마디에 흔들린다. 이걸 개인이 단기로 맞히는 건 거의 도박에 가깝다. 실제로 전문가들 전망도 매달 레인지가 왔다갔다 하지 않나.
둘째, 한 번에 다 넣었다. 만약 그때 500만원을 5번에 나눠서, 몇 주 간격으로 사모았다면 평균 단가가 훨씬 낮아졌을 거다. 적립식으로 접근했다면 1407원 구간에서도 담을 수 있었을 테니까.
셋째, 목적이 없었다. 나는 그냥 "오를 것 같아서" 샀다. 미국 여행 갈 계획이 있었던 것도, 달러 자산이 꼭 필요했던 것도 아니었다. 쓸 데가 정해져 있었다면 환율이 좀 빠져도 "그래, 어차피 여행 경비니까" 하고 넘겼을 텐데, 순수하게 차익만 노리니 하루하루 환율에 멘탈이 흔들렸다.
그래서 지금은
달러를 아예 안 본다는 얘기는 아니다. 여전히 자산의 일부를 달러로 두는 건 분산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환율이 크게 출렁일 때 원화 자산만 있으면 그것도 리스크니까. 다만 접근법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는 목돈을 한 방에 넣지 않는다. 정말 달러가 필요한 목적(해외여행, 해외주식 매수 대금 등)이 생겼을 때, 그 필요분만큼만, 그것도 몇 번에 나눠서 환전한다. 환율이 오르면 "다행이다", 내리면 "더 싸게 샀다" 정도로 마음을 먹는다. 방향을 맞히려는 게임 자체를 그만둔 셈이다.
솔직히 아직도 그때 물린 달러예금은 살짝 마이너스인 채로 남아 있다. 팔지도 못하고 그냥 두고 있다. 손절하기엔 아깝고, 더 넣기엔 무섭고. 이게 딱 방향 베팅했다가 물린 사람의 전형적인 상태다.
환율은 오를 수도, 내릴 수도 있다. 그걸 맞히려 들지 말고, 나한테 정말 필요한 만큼을 나눠서 담는 것. 이 뻔한 원칙을 30만원 수업료 내고 배웠다.
※ 이 글은 개인적인 정보 공유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모든 투자 판단과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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